1.sf 자이언츠 역사
현시점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는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김도영 선수와 이정후 선수를 뽑을 것이다. 두 선수 모두 한국 야구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 아주 소중한 자원들이다. 글쓴이는 이정후 선수를 뽑을 것이다. 김도영보다 5살 많은 나이로 더 일찍 프로무대에 데뷔하여 비교적 오랜시간 꾸준히 활약하며 국내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각종 국제대회를 뛰며 뛰어난 타격능력을 보여주며 한국 야구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정후선수가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여 활약하고 있는 팀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즉, sf 자이언츠이다.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들어봤을 베리본즈 버스터 포지와 같은 선수가 뛰었던 팀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sf 자이언츠에 대하여 깊게 알아보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구단 중 하나로, 19세기 후반 뉴욕에서 시작된 이 팀의 여정은 미국 야구사에서 적지 않은 존재감을 가져왔다. 원래 1883년 뉴욕에서 창단된 뉴욕 자이언츠로 출발한 이 팀은, 20세기 중반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현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자리 잡았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거쳐 갔고, 다수의 내셔널리그 우승과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며 명문 구단으로 성장하였다.
자이언츠의 기원은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스와 같은 구단주 아래 창단된 뉴욕 자이언츠는 내셔널리그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세기 말부터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성장했다. 1902년부터 1932년까지 존 맥그로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팀은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이했다. 맥그로의 지도 아래 자이언츠는 1904년, 1905년, 1911년, 1912년, 1913년, 1917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등 총 10번의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1905년에는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꺾고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921년과 1922년에도 뉴욕 양키스를 꺾고 연속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면서 뉴욕 야구계를 양분하는 강호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전설적인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이 있다. 매튜슨은 자이언츠에서만 17시즌을 뛰며 373승을 기록했으며, 그의 뛰어난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는 멜 오트가 팀을 이끌며 자이언츠의 전통을 이어갔다. 특히 1951년에는 ‘샷 헐드 어라운드 더 월드’로 불리는 바비 톰슨의 극적인 홈런으로 브루클린 다저스를 꺾고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1954년에는 ‘세이 헤이 키드’라 불리는 윌리 메이스의 활약 속에 월드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4승 0패로 완파하며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이 되면서 뉴욕 자이언츠는 점차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뉴욕에는 이미 뉴욕 양키스와 브루클린 다저스라는 강력한 경쟁 팀이 존재했고,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폴로 그라운즈는 노후화되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구단주였던 호레이스 스톤햄은 서부로의 이전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마침 브루클린 다저스 역시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결국 1957년, 두 팀은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동하기로 결정했고, 1958년부터 뉴욕 자이언츠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한 자이언츠는 초기에 윌리 메이스와 오를란도 세페다 등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며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1962년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게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도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으나,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후안 마리찰, 윌리 맥코비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챔피언십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더욱 힘든 시기를 맞았다. 구단은 재정적 어려움과 성적 부진을 동시에 겪으며 팬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선수로는 바비 본즈와 게이로드 페리 등이 있었지만, 이들만으로는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기에 부족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윌 클락과 케빈 미첼 등의 젊은 선수들이 등장하며 다시 경쟁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1993년, 자이언츠는 FA 시장에서 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배리 본즈를 영입했다. 배리 본즈는 이후 2007년까지 팀의 중심이 되었으며, 2001년 한 시즌 73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그는 통산 762홈런을 기록하며 MLB 역사상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스테로이드 논란으로 인해 그의 기록은 영광과 논란이 공존하는 업적이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또 다른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브루스 보치 감독이 이끌던 팀은 2010년, 2012년, 2014년에 세 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특히 2010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후 2012년과 2014년에도 강력한 투수진(매디슨 범가너, 팀 린스컴, 맷 케인)과 클러치 플레이를 앞세워 우승을 거머쥐며 2010년대를 대표하는 왕조를 구축했다.
202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자이언츠는 다시 한번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21년에는 107승을 거두며 정규시즌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지만,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에서 숙적 LA 다저스에게 패배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팀은 여전히 강력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과 함께 또 한 번의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4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설들을 배출하며 명문 구단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왔고, 앞으로도 메이저리그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sf자이언츠 야구장
세계에는 정말 다양한 야구장들이 있다. 정말 웅장한 현대 산업체의 총집합인 돔구장, 아름다운 자연과 한대 어우러진 장관인 야구장, 긴 역사의 가지고 있어 위대하고 소중한 야구 역사의 흔적들을 여럿 담고있는 야구장 등등 보는 것 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야구장들이 존재한다. 이번에 소개할 sf 자이언츠의 야구장은 여러 자연환경 들 중에서도 희소성이 있는 바다와 어우러진 구장이다. 정식명칭 오라클 파크라 불리는 sf자이언츠의 홈구장에 대하여 알아보자.
먼저 오라클 파크가 세워진 배경을 알아보자. 오라클 파크가 세워지기 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960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캔들스틱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캔들스틱 파크는 수많은 불편함과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원래 미식축구 팀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함께 사용하던 구장이었기에 야구 경기를 치르기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만의 특유의 강한 바람과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인해 선수들과 팬들 모두에게 악명이 높았다. 특히 저녁 경기가 열릴 때면 차가운 바람이 몰아쳐 경기 관람이 힘들 정도였고, 이러한 환경 때문에 타격 성적이 저조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야구선수들한테는 엄청나게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1990년대 초반부터 자이언츠는 새로운 전용 야구장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구장 이전은 쉽지 않았다. 1987년과 1989년, 1992년에 걸쳐 여러 차례 새 구장 건설을 위한 주민 투표가 진행되었지만, 비용 문제와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모두 부결되었다. 심지어 1993년에는 구단이 플로리다로 이전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1996년, 샌프란시스코 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구단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현재의 오라클 파크 건설이 확정되었다.
1997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시내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사우스 비치 지역에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고, 2년여의 공사 끝에 2000년 4월 11일, 퍼시픽 벨 파크라는 이름으로 새 구장이 개장했다. 이후 2003년에는 SBC 파크, 2006년부터는 AT&T 파크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2019년부터 현재의 이름인 오라클 파크로 불리게 되었다.
오라클 파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샌프란시스코만을 바로 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오라클 파크에 대하여 알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 야구장의 정체성 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장 오른쪽 외야석 뒤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홈런이 외야 담장을 넘으면 공이 그대로 바다로 빠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맥코비 코브’라고 불리며,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타자 윌리 맥코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맥코비 코브는 경기 도중에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으로, 많은 팬들이 카약이나 작은 보트를 타고 떠다니며 홈런볼이 물에 빠지기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자이언츠의 간판 스타였던 배리 본즈가 활약하던 시절, 그가 친 거대한 홈런볼이 물에 빠지는 모습은 오라클 파크를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도 좌타자가 맥코비 코브로 직접 넘기는 홈런을 치면 특별한 기록으로 남는다. 심지어 이렇게 회득된 홈런공의 가치는 더욱 높았으며, 경매 시장 등 에서도 더욱 높은 금액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심지어 경기장의 좌석 배치도 인상적이다. 총 41,915석 규모로 설계된 이 구장은 어떤 자리에서도 야구를 관람하기 좋은 시야를 제공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특히 1루 쪽이나 외야 좌석에서는 샌프란시스코만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팬들에게 더욱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구장 곳곳에는 거대한 오두막 형태의 콜라 병(코카콜라 존)과 미끄럼틀이 설치된 글러브 조형물 등 독특한 구조물이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오라클 파크는 개장 이후 수많은 명경기의 무대가 되어왔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세 차례(2010년, 2012년,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곳은 더욱 전설적인 구장이 되었다.
2010년, 자이언츠는 오라클 파크 개장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2012년과 2014년에도 강력한 투수력을 앞세워 챔피언에 올랐다. 특히 2014년 월드시리즈에서는 매디슨 범가너가 믿을 수 없는 투구를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오라클 파크는 이 순간을 함께한 팬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또한, 2007년에는 배리 본즈가 이곳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 기록(통산 762홈런)을 세운 역사적인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가 홈런을 칠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하며 맥코비 코브로 향하는 공을 지켜봤고, 그의 756번째 홈런이 터진 날, 오라클 파크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뜨거운 순간 중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아직까지도 많이 회자되는 순간이다.
오라클 파크는 단순한 야구장을 넘어 샌프란시스코의 중요한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연중 다양한 콘서트, 기업 행사, 마라톤 대회 등이 열리며 지역 사회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또한,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바닷물을 활용한 냉각 시스템을 사용하는 등 환경 보호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는 단순히 야구 경기가 열리는 장소가 아니라,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경기장의 아름다운 전망, 독특한 설계,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역사적인 순간들은 오라클 파크를 MLB 최고의 구장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다면, 단순히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야구를 보고, 경기장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도시의 매력을 느껴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명예의 전당 선수
sf 자이언츠 구단은 많은 명예의 전당 선수를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명예의 전당 선수들에 대하여 알아보며 이들을 통해 sf 자이언츠의 발자취에 대하여 자세히 파악해보도록 하자.
1. 윌리 메이스
윌리 메이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51년 뉴욕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그는 1972년까지 자이언츠의 중심을 지키며 660홈런, 3,283안타, 1,903타점, 타율 .302를 기록했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1954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나온 ‘The Catch’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와의 경기에서 빅센트 워트스의 타구를 등지며 전력 질주한 뒤, 놀라운 다이빙 캐치로 잡아낸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 플레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메이스는 24차례 올스타 선정, 12번의 골드글러브 수상, 2번의 MVP 수상(1954, 1965) 등 독보적인 기록을 남겼으며, 완벽한 5툴 플레이어로 평가받았다. 그의 등번호 24번은 영구 결번이 되었으며, 197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베리 본즈
베리 본즈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 기록(762홈런)을 보유한 역사상 최고의 홈런 타자로 꼽힌다. 1993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 그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선수로 거듭났다. 특히 2001년에는 단일 시즌 73홈런을 기록하며 MLB 역사를 다시 썼다.
그의 기록은 단순한 홈런 숫자를 넘어선다. 본즈는 7차례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으며(이 중 5회가 자이언츠 소속), OPS 1.051, 출루율 .444, 통산 2,558볼넷(역대 1위)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겼다. 특히, 고의 사구 688개라는 기록은 상대 팀들이 그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논란을 떠나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상징적인 선수였으며, 그가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등번호 25번은 현재까지 자이언츠에서 비공식적으로 영구 결번 상태다.
3. 윌리 맥코비
윌리 맥코비는 1959년부터 1980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중심 타자로 활약한 전설적인 좌타자다. 그는 통산 521홈런, 1,555타점, OPS .889를 기록하며 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홈런 타자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그의 거대한 타구는 자주 오라클 파크(구 AT&T 파크) 외야 담장을 넘어 샌프란시스코만으로 빠졌는데, 이를 기념하여 ‘맥코비 코브’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도 좌타자가 외야 오른쪽으로 홈런을 날릴 때마다 팬들은 그의 이름을 떠올린다.
1969년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한 맥코비는 1986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그의 등번호 44번은 영구 결번이 되었다.
4. 후안 마리찰
후안 마리찰은 1960년부터 1973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우완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통산 243승 142패,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했으며, 1963년에는 25승을 거두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높은 다리 킥 투구폼으로, 이는 타자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는 완투 능력이 뛰어나 경기에서 완투승 244회를 기록하며 오랜 이닝을 책임지는 능력을 갖춘 투수였다.
198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후안 마리찰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라는 역사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그의 등번호 27번은 현재까지도 자이언츠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5. 버스터 포지
버스터 포지는 자이언츠가 2010년대 세 차례(2010, 2012,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포수다. 200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2010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며 팀의 주전 포수로 자리 잡았고, 같은 해 자이언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2년에는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하며 팀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았고, 2014년에도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포스트시즌 명장면을 다수 연출했다. 그는 투수들과의 완벽한 호흡, 뛰어난 프레이밍 능력, 클러치 능력까지 겸비한 완벽한 포수였다.
2021년 은퇴한 후, 그의 등번호 28번은 비공식적으로 영구 결번 상태이며,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실시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역사는 곧 위대한 선수들의 역사다. 이들은 모두 각 시대에서 팀을 대표하며 야구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개인적으로 이정후 선수가 sf 자이언츠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며 미국과 한국의 야구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과 응원의 마음을 갖으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